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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민제閔霽 기록부분

이지 easy 2022. 8. 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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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민제閔霽
조선왕조실록 - 민제閔霽

 

민제(閔霽, 1339년 ~ 1408년)는 태종대왕의 정비인 원경왕후의 아버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기록을 찾아 보았습니다.

 

○驪興府院君 閔霽卒。

여흥부원군 민제가 죽었다.

 霽字仲晦, 號漁隱, 驪興君 抃之子也。 

제의 자는 중회, 호는 어은, 여흥군 변의 아들이다.

年十九, 中至正丁酉科, 選入翰林, 歷官至商議密直。 

19세에 지정(명나라 태조연호)정유년에 과제에 합격해, 한림에 뽑혀 들어가, 여러 벼슬을 거쳐 상의밀직에 이르렀다.

洪武壬申, 我太祖開國, 陞政堂文學, 戊寅, 封驪興伯, 領禮曹事。 

홍무임신년에, 우리 태조가 개국하자, 정학문당에 승진했고, 무인년에, 여흥백에 봉해졌고, 영예조사가 되었다.

自少以知禮聞, 凡國家典禮, 皆所詳定。

젊어서부터 예를 아는 것으로 알려져, 무릇 국가의 규정된 예를,  모두 상정(국가적 기준과 규칙을 정함)했다.

 建文己卯, 知貢擧。 

건문기묘년에 지공거가 되었다.

庚辰, 上爲世子, 進拜門下右政丞, 尋遷左政丞。(찾을 심, 옮길 천)

경진년에, 주상이 세자가 되자, 문하우정승으로 나아가, 좌정승으로 옮겼다.

 上卽位, 以國舅復封驪興伯。

주상이 즉위하자, 국구(왕의 장인)으로서 다시 여흥백을 봉하였다.

 辛巳, 賜純忠同德補祚贊化功臣之號, 改封府院君。 

신사년에, 순충동덕보조찬화공신의 호를 주고, 부원군으로 다시 봉하였다.

至是疾革, 上視之, 整衣冠(가지런할 정), 言辭稍似平時, 越六日卒, 享年七十。 

이때이르러 병이 심해져, 주상이 그를 보니, 의관을 가지런히하고,  말하는 바가 평시와 같았는데, 육일만에 죽어, 향년 칠십이었다.

上震悼, 輟朝親臨(그칠철, 임할임), 諡文度。

주상이 매우 슬퍼하여, 조회를 정지하고 친림해, 시호를 문도라 하였다.

 霽天資溫仁淸儉, 留心經史, 

제는 선천적인 자질이 따뜻하고 인자 청렴해, 경사(경전과 역사?)에 마음이 머물러,

不事家産, 闢異端惡淫祠, 

가산은 일삼지 않았고, 이단을 배척하고 음사를 미워하여,

使工圖 僕(肄)〔隷〕 制挺嗾犬逐僧巫及以藥濟人若物之狀於壁以觀之。 

화공을 시켜 종僕이 막대기를 가지고 개[犬]를 시켜 중과 무당을 쫓는 그림과 약(藥)으로 사람과 동물을 구제하는 모양을 벽에 그려 놓고 보았다.

尊榮旣極, 略無富貴相,

존귀와 영화가 극진했으나, 조금도 부귀한 상이 없이, 

 日以碁局自娛, 善評詩, 蕭然有出塵之趣。 
날마다 바둑으로써 스스로  즐기고, 시를 잘 평론하여, 소연히 출진의 정취가 있었다.

常謂子無咎等曰: "汝輩驕盈不悛, 必敗。" 

항상 아들인 무구 등에게 일러 말하길 : 너희들이 매우 교만하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패할것이다. 하였으니,

可謂知子矣。 

자식들을 알아보았다 하겠다.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51면
【분류】
인물(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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