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주변 지형을 고전적 풍수지리 관점에서 분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단은 원래 조선 초 북교와 남교에서 지제(地祭)와 천제(天祭)를 지냈던 곳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유교적 관점에 맞지 않아 곧 원구단의 천제가 폐지되며 원구단은 원단에서 남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고 국가적 큰 제사였던 대사(大祀)에서 풍운뇌우단의 중사(중간 단계의 제사)로 축소되며 기우제 정도를 지내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원구단을 도성 내 현 조선호텔 부지 남별궁 터에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남산 아래쪽의 산 이름은 용산이 아닌 둔지산이었으며 당시에 용산이라는 명칭은 인왕산과 안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현재 원효대교 부근으로 빠지는 만초천 바로 서쪽의 산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