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작년을 돌이켜 본다.
2021년은 정말 상처로 얼룩진 한해 였다. 근본적인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고 거기서 파생된 이유는 작년 새해 초부터 회사에서 ERP(자동회계파일)를 쓰지 못하게 했다. 여러 이유에서 일일이 엑셀에 기입을 해야 했고, 데이터가 발생할 때마다 각각의 파일에 찾아가서 업데이트를 해줘야 했다. 일이 몇배 많아진 것이다. 매주 이어지는 신입사원면접끝에 설 쯤에 한 번 인력이 충원되었으나 다 나가버리고 또 5월에 다시 우여곡절 끝에 충원을 하였다. 나도 너무 지쳐서 몸이 아파지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나오게 되었다. 그냥 참고 다니면 될 일이었지만 그러기 싫었다. 내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거부하는 일은 나올 때가 된 것이다. 인수인계를 해 주었으나 그 사람도 일주일 후, 또 부장도 한달 후에 나갔다고 들었다. 관리팀장도 스트레스로 몸이 아파 나가고 후임이 왔는데 그 후임도 또 두달 후에 나갔다고 한다. 아무튼 그 회사에 다니며 너무 시달린 탓인지 취업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은 휴식이 필요했고, 취업대신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는 바람에서 블로그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쇼핑몰도 시작하고 코인도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퇴직금도 뒤늦게 주는 바람에 쉬어도 쉬는것 같지 않게 몇 달을 날리고 이유없이 아픈날도 많았다. 거의 극심한 스트레스 였다고 본다. 쇼핑몰도 그닥이고 코인도 별루고 주식은 올랐지만 투자 시점에는 돈이 별로 없었고 돈이 생길 때 쯤에는 타이밍을 놓친 시점이었다. 아무튼 내맘대로 잘 된것이 정말 거의 없는 한 해 였다. 마지막 11월 12월에 쇼핑몰과 블로그가 이전보다 약간의 수익을 낸 것이 그나마 작은 성장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암울한 일년을 보내고 나니 그냥 텅 빈것 같고 아무 생각도 없다. 학교공부에 뜻이 있어 주경야독 하려는 욕심에 시작했지만 상황이 안따라 주니 앞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공부는 적성에 맞지만 학비가 장난이 아니다. 몇년만 빨리 시작했더라면 그런 생각과 그냥 다 때려치고 공부나 편히 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어처구니 없는 생각마져 들었다.
아직 임인년은 아니지만 2022년 해가 바뀌었다. 하지만 바뀐것은 없다. 달력의 숫자만 2022를 가리킨다. 오늘도 늦잠을 잤고 의욕이 없이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다. 유튜브를 켜고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를 검색했다.
한 목사님이 먼저 나온다. 엘리트 목사님이 아픈 딸이 병원에서 약부작용으로 장애를 얻게 된 이야기를 하면서 예전에는 질병을 낫게 해달라,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당신의 뜻을 이룰테니 용기를 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 또 신사임당에서는 윤인경 기자가 나와서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고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며 설계도 대로 지어지는 집은 없는게 당연하다고 덤덤히 말한다. 또 그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너무 능력에 맞지 않는 과도한 목표를 세웠거나 타인에게 과한 기대를 했을 것이라고 한다. 연탄길의 이철환작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라고 말하며, 그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들어보니 다 맞는 말인것 같다.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나만 망한건 아니었어. 역시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원치 않는 삶을 사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삶의 형태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게 하는지 그 방법도 모른다. 방법을 알더라도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보는데 그게 어쩌다 맞아 떨어지면 성장하고 운이 좋으면 성장하고 운이 나쁘거나 예측이 틀리거나 힘이 딸려 목표치를 이루지 못하면 못할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함은 남는다.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하면 왜 사냔 말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목표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삶의 방식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삶은 그냥 사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냥 되는대로 사는 삶. 그런데 이것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목표도 있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면 아무것도 미리 준비할 수가 없지 않은가? 친할머니는 80세에 수의를 직접 준비하셨는데 그해 봄에 춘월이 두번 있었다. 그러니까 윤달이 있는 해였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95세까지 사시고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만약 그냥 되는대로 사는 삶이었다면 80세에 미리 어떻게 자신의 수의를 준비하는가 말이다. 또 80세에 미술전을 준비하신 스승님을 보면 2년 전부터 미술 전시회 계획을 준비하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림준비 전시회 예약부터 그림 거는 것까지.. 나에게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미술전에 출품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시겠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결국 그림만 몇 점 준비하고 출품은 하지 못하게 됐었다. 그림도 그리고 출품도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마음의 여력이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스스로 남과 상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남과의 관계 속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고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스스로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노력하면 될것이고, 두번째는 마음을 비우고 전략적으로 생각하면서 노력을 하되 안됐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누구나 그러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지는 않다. 내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보았다. 남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내 최선을 다해 보았다는 말이다. 그 정도는 개인의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다르니까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는 없다. 베어그릴스 같은 수준으로 원한다면 난 최선을 다한게 아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99.9%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게 아닌게 돼버린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치 100%를 다 돌리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죽을만큼 힘든 것인지 안다면 함부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난 50%나 60%만 쓰면 된다고 생각된다. 그래야 만약에 필요할 때를 대비해 힘을 남겨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0%만 쓰고 살면 더 해피한 것이다. 안쓰면 안쓸수록 좋다. 하지만 그건 이미 어려운 세상 아닌가. 최선을 다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적당히 살면 된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헛헛함 그게 극복이 되야 하는데 마음속 밑바닥에 그게 뚫려 있다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될것같다. 근자감이 중요한 이유는 그 마음속의 바닥. 자신을 지탱해 주는 그것이 자기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딛고 뛰어 오를 수 있다는 마음의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없다면 디딜 발판이 없으니까 무엇도 하기가 힘들어진다.
어쩌면 내가 작년 한해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자신이 계속 해낼 수 있는 근원적인 바탕이 누구나 있어야 한다. 그게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런게 없는것 같다. 그래서 허무하고 허전한것 같다. 무엇이 내 삶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삶의 의지처를 삼아야 할까? 올해에는 그것을 찾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분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축년을 마감하며 (0) | 2022.01.31 |
---|---|
새신발 신는꿈, 길고치는 꿈 (0) | 2022.01.31 |
영어회화는 스픽으로 / 즐거운 영어회화 (1) | 2022.01.31 |
때가 되어야 한다는 말 (0) | 2022.01.02 |
해피뉴이어 (0) | 2022.01.01 |
디지털 사용을 할 수록 노예가 되는 이유 (0) | 2021.12.25 |
성북동 산책 (0) | 2021.12.22 |
지인들이 보내준 먹거리 (0) | 202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