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실전풍수

김포 장릉

이지 easy 2021. 9. 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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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장릉은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인조의 부모님의 릉. 장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능의 구성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의 향로와 어로는 직선으로 경사가 졌으며, 중간에 계단을 두어 지형에 따라 설치하였다. 비각 안에는 한 기의 표석이 있는데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면서 세운 표석이다. 비각 옆에는 육경원(毓慶園, 인헌왕후의 추존 전 원의 이름)으로 있을 때 사용한 비석 받침돌이 장릉 근처에서 노출되어 발굴 후 전시되어 있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만이 둘러져 있는데, 이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 되기 전 흥경원을 조성할 때의 호석이다.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된 이후에 새로 설치한 석물이다.

 

능의 역사

1619년(광해군 11)에 선조의 왕자 정원군(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양주 곡촌리(현 남양주시 금곡동)에 묘를 조성하였다. 1623년에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원대원군으로 추봉되고, 1626년(인조 4)에 계운궁 연주부부인(인헌왕후)이 세상을 떠나자 김포 성산에 육경원을 조성하였다. 이때 정원대원군의 원의 이름을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이듬해인 1627년에 흥경원을 육경원으로 천장하면서 원의 이름을 흥경원이라 하였다가, 1632년(인조 10)에 정원대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이때 능을 왕릉제도에 맞게 새로 조성하였다.

 

원종(元宗) 이야기

원종(재세 : 1580년 음력 6월 22일 ~ 1619년 음력 12월 29일)는 선조와 인빈 김씨의 셋째 아들로 1580년(선조 13)에 경복궁 별전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에 정원군(定遠君)에 봉해졌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선조를 모신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원종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를 모시면서 험난한 일을 겪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이에 대처하여 모두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전란의 한가운데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신하들에게 명하여 정원군(원종)을 영변으로 데려가 왜적을 피하도록 하였다. 그 때 정원군이 영변에 이르러 울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임금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왜적의 형세가 날로 성하고 임금의 행차는 날로 멀어지니,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임금과 신하가 죽음과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인데, 이 몸이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를 전해듣고 가상히 여겨 정원군을 다시 불러왔으며, 그 뒤로 정원군은 선조 곁을 떠나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를 옆에서 모셨다고 한다.
광해군 즉위 후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가 셋째 아들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지에서 자결하였고, 정원군은 그의 화병으로 1619년(광해군 11)에 40세로 세상을 떠났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으로 첫째 아들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사친으로 정원대원군에 추존되었으며,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정통성 문제로 인해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인헌왕후(仁獻王后) 이야기

인헌왕후 구씨(재세 : 1578년 음력 4월 17일 ~ 1626년 음력 1월 14일)는 본관이 능성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평산부부인 신씨의 딸로 1578년(선조 11)에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에 선조의 아들 정원군(원종)과 가례를 올려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원종 사이에서 3남(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을 낳았다. 1623년(인조 1)에 첫째 아들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연주부부인에 책봉되고 계운궁(啓運宮)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이후 1626년(인조 4)에 경덕궁(경희궁) 회상전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632년(인조 10)에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다.


김포 장릉 인사말 

https://royaltombs.cha.go.kr/multiBbz/selectMultiBbzView.do?id=103&no=103&bbzId=tombs&mn=RT_01_16_04

 

멀리 계양산을 바라보며 수려한 장릉산(구 북성산) 자락속에 자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포 장릉」(章陵, 사적)은 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으로 돌맹이 하나 풀 한포기에도 옛 조상의 혼과 숨결이 깃들어 있는 김포의 소중한 문화 유적입니다. 봉분,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정자각, 비각, 수복방, 재실, 홍살문, 연지, 노송 등 조선왕조의 능제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깨끗한 환경정비와 친절한 관람안내로 다시 찾아오고 싶은 장릉이 될 수 있도록 소장을 비롯한 전직원은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포장릉 항공사진
김포장릉 항공사진

아래의 사진은 2019년에 방문한 사진입니다.

김포장릉 이정표
세계문화유산 김포 장릉
김포장릉배치도
장릉의 배치
김포장릉 연지
능 아래의 연지 - 물이 항상 맑게 유지되는 자연 연못

명당의 아래 쪽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연못의 형태. 물이 맑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포장릉 홍살문
홍살문

 

김포장릉 비석 받침 돌
비석 받침 돌 
김포장릉 계양산 경관
조산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 지금 아파트 공사로 가려져 공사 중단명령이 내려 졌다고 한다.

미리 방문자리스트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서 갔던것 같습니다.

다시 확인해 보니 우측에 보이는 아파트는 풍무삼성쉐르빌 아파트로 이미 2002년 5월에 입주가 완료된 아파트였습니다. 그래도 보기 싫기는 하네요. 가장 중앙에 있는 동은 사실 경관을 많이 해치고 있지요. 문제가 되는 아파트는 조금 왼쪽에 보면 타워크레인이 짓고 있는 아파트입니다.

 

김포장릉 계양산 경관
조산이 보이며 좌우 관쇄가 잘 되어 있는 구조
김포장릉 문인석상
문인석과 무인석 - 석상의 상태가 좋다. 

보통은 산안개로 인해 석물이 검게 변하는데 김포장릉은 안개가 석상 아래까지만 올라온다고 합니다. 

김포장릉 자좌오향
자좌오향 - 정남향으로 배치 되었다.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김포 장릉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 완공을 앞두면서 왕릉 앞을 막아 계양산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갔을 때만 해도 아파트가 높지 않아서 가리지는 않았지만 짓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줄은 몰랐습니다. 이날은 미리 방문자 명단을 제출하고 학술목적으로 허가를 받아서 능상부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포 장릉은 세계 문화 유산에 지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정확한 풍수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는 좋은 자리 이기도 합니다. 방향은 정확하게 남쪽을 향해 있으며 주변의 산들의 배치와 앞쪽의 연못, 안산, 조산까지 참으로 편안하고 좋은 곳입니다.  양지바르고 포근한 곳인데 좌청룡이 잘려 있는 문제가 있는 곳이지요. 그래서 일까요? 이런 문제가 생기고 말았네요. 원래 입구를 남쪽으로 내야 하는데 동쪽에 입구가 있는바람에 길이 나서 좌청룡 맥이 길로 끊어져 있습니다. 물론 길이 그리 큰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하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 되어 버렸지요. 경복궁도 좌측이 약한데 여기도 좌측의 문제가 있네요. 이 길이 당시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인조의 삶에 상당히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벗어난 이야기인 합니다만 서울 삼성동의 선릉도 좌측에 길이 저런 식으로 나 있더군요. 그렇다면 왕의 힘을 뺏기 위해서 일부러 저렇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왜냐하면 왠만한 권문세족의 음택은 저렇게 된 곳을 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유독 왕릉만 저렇게 좌청룡이 훼손된 것이 눈에 잘 띄는데요. 왕의 힘을 뺏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실제로 가보면 왕릉보다 권문세족의 음택이 더 좋은곳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장릉에 묻힌 원종의 아들인 인조, 선릉에 묻힌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 둘 다 끊어진 좌청룡으로 인해 안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왜 왕릉인데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점점 의도적인 것으로 심증이 굳혀 지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 정리해서 발표도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갔을 때도 아파트가 조금은 보였는데 저 자리에 아파트 지어도 되나? 좀 찜찜한 마음이 들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원래는 왕릉 주변은 문화재 청의 허가를 받아서 건물을 짓는데 행정 착오인지 뭔지 허가 없이 짓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짓기 전에 자리를 잘 확인하고 지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짓지 말아야 할 곳 지어야 할 곳 구분없이 그저 개발위주로 치밀한 계획 없이 무차별적으로 지어서 참 답답하네요.

 

자리가 아닌 곳에 터를 잡으면 분쟁이 많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집을 짓는 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깊은 검토와 신중함이 필요한 것인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왕릉의 경관이 손상 되거나 하겠네요. 세밀한 검토 없이 무식하게 무대뽀로 밀어 붙이는 사람들 하나 때문에 결국에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이런 건축환경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합니다.   

 

김포장릉 아파트로 가려진 계양산
김포장릉 - 신축아파트에 가려 조산인 계양산이 보이지 않는다. 흉물 스럽다.

500여년을 지켜온 문화재가 한 순간에 망가지고 말았네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김포장릉에서 계양산까지

 장릉에서 조산인 계양산이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명당 앞을 가로로 흐르는 물길까지 조건이 맞기란 쉽지 않은 구조인데 망가져서 참 안타깝습니다. 아라뱃길이 굽이치지 않고 너무나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은 아쉽네요. 

 

 

https://news.v.daum.net/v/20210916203313592

 

왕릉 옆에 무허가 아파트..3,000채 공사 중단

<앵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일부 아파트 공사가 중단될 상황입니다. 조선 왕릉 근처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인데, 뾰족한 해법은

news.v.daum.net


2021년 9월 23일 추가내용

 

문화재보호법 상으로는 문화재 경계로부터 반경 500미터 범위 내에 지어진 건축물에 한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500미터가 넘어도 문화재에 영양을 미치는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조산인 계양산을 가리게 된다면 주작이 사라져 풍수적인 의미도 상실되며,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잃게 되겠지요. 이번 케이스는 500미터하고 상관 없이 계양산 경관을 가리는 범위 내에 있는 아파트는 모두 문제가 되는 케이스 입니다. 

 

저 앞을 가리고 있는 아파트는 풍수용어로는 규봉(엿보는 봉우리)이라고 해서 장릉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나쁩니다. 안방을 남이 정면으로 쳐다 보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찾아보니 문화재보호법이 다른 법률보다 우선 순위가 높은것 같습니다. 한 번 가치가 훼손되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요. 혹시 그쪽에 입주를 앞두고 계시다면 돈 문제는 둘째고 입주 문제를 미리 예상하시고 조율해야 할 듯 합니다. 

 

청원이 진행 중이기는 한데 사실 청원과 상관 없이 철거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601310

 

김포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 > 대한민국 청와대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과 함께 갑니다.

www1.president.go.kr

 

문화재보호법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AC%B8%ED%99%94%EC%9E%AC%EB%B3%B4%ED%98%B8%EB%B2%95

  •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 ① 시ㆍ도지사는 지정문화재(동산에 속하는 문화재와 무형문화재를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하여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 조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하여야 한다.

 

  • ② 건설공사의 인가ㆍ허가 등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은 지정문화재의 외곽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보호구역의 경계를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외부 지역에서 시행하려는 건설공사로서 제1항에 따라 시ㆍ도지사가 정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에 관하여는 그 공사에 관한 인가ㆍ허가 등을 하기 전에 해당 건설공사의 시행이 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 경우 해당 행정기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개정 2014. 1. 28., 2019. 11. 26.>

 

  • ③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정문화재의 역사적ㆍ예술적ㆍ학문적ㆍ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및 그 밖에 문화재 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하여 그 외곽경계로부터 500미터 안으로 한다. 다만, 문화재의 특성 및 입지여건 등으로 인하여 지정문화재의 외곽경계로부터 500미터 밖에서 건설공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 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500미터를 초과하여 범위를 정할 수 있다.  <개정 201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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